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그토록 많은 것을 보았으나
그토록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말이 없음이여....로베르트 발져 <산책자>중

다양한 유형의 신경증자들에 대한 오랜 기간의 정신분석 임상과정을 거치면서, 프로이트는 기존의 이론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않는 새로운 임상 사례들에 직면한다. 그는 그 현상을 더 명료하게 해명해줄 새로운 이론과 개념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해 온 자신의 기존 이론에 대해 스스로 냉철한
비판과 반성을 행하기에 이른다.
먼저 지형학적 모델에서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관계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정서적 불안정은 서로 다른 두 정신 활동 사이의 과도한 갈등 때문에 생겨나며,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면서 이 갈등이 해소되어 증상이 극복된다고 해석해왔다. 그런데 문제는 억압된 대상들뿐만 아니라 억압하는 힘 자체도 의식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상황을 마주한 프로이트는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갈등보다 무의식 내부의 갈등이 더 근본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지형학적 정신 모델로는 무의식 내부에서의 갈등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움에 직면한것이다.
둘째, 특정한 욕구와 관념을 금지하고 억압하는 ‘도덕적인 힘’은 (전)의식적일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이기도 하다. 보통사람들은 도덕명령을 내리는 내부의 힘에 의해 반복해서 압도당하는데 그 힘이 어디에서 발생하는지 인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로 인해 지형학적 모델안에서 도덕적 명령의 위치가 모호해지고, 지형학적 정신이론으로는 금기명령의 정체가 무엇인지 만족스럽게 해명하기 어렵다.
셋째,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갈등은 정신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그 결과 방어 에너지가 고갈된 자아는 정신적 위기의 도래를 알리는 불안 신호를 발산하지만,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갈등이 불안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불안에는 본능 때문에 생겨나는 불안, 도덕적 불안, 현실불안도 있다. 이런 다양한 불안의 차이를 지형학적 정신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넷째, 지형학적 정신 모델에서는 의식적인 ‘현실검증’과 무의식적인 ‘방어작용’을 동시에 수행하는 자아의 위치를 설정하는 데 곤란을 겪는다. 그리고 자아로 하여금 강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정신조직(초자아)를 설명하고 위치를 설정하는 일 역시 수월치 않다.
다섯째, 개인의 정신은 타고난 기질과 외부대상 사이의 관계 경험에 영향받아 형성된다. 그런데 지형학적 정신 모델에는 유년기 대상들과 사회적 대상들이 개인의 정신에 미친 각각의 영향과 여러관계들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개념장치가 부족하다. 예들들어 가족과 문화가 어떤 시점, 어떤 상황에서 개인의 정신에 내면화되며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가 결여 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는 중요한 대상들과의 다양한 ‘ 대상관계’양태가 자아의 발달과 초자아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까지도 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정신모델이 필요했다.
마지막으로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류 내부의 엄청난 파괴역동을 절감한 프로이트는 죽음본능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이후 그는 정신 깊은 곳에 내재한 파괴욕동으로부터 유기체를 보호하는 자아의 제반 방어기능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다. 지형학적 정신모델에서는 정신이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되어 있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이 분열성을 인정해야 사람들이 무의식의 힘에 주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년의 프로이트는 서로 다른 정신 조직들 사이의 분열과 차이를 ‘통합’하는 자아 기능의 소중함을 절감한다.
그리고 정서적 불안정을 유발하는 부정적 요인으로 해석되어 온 죄책감과 양심의 목소리가 갖는 긍정적 기능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상의 이유들로 인해 프로이트는 지형학적 정신모델의 문제점을 보완하려고 고심하며, 67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30년간 고집스럽게 지켜온 기존 정신이론을 보완하는 새로운 정신모델은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역동적 정신구조론'이다
정신 내부는 본능 충돌들과 그것을 방어하고 조절하는 힘, 그리고 금지 명령 사이의 역학적 관계 활동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로이트는 이 힘들을 각각 이드, 자아, 조자아로 명명하는데 정신현상의 다양한 변화는 이 힘들 사이의 역학 관계 변화에서 기인하는것으로 해석했다.
김정연 상담사 ㅣ '책에서 심리를 읽다' 네이버 밴드 운영자
<참고문헌>
정신분석학의 근본개념, 프로이트, 윤희기, 박찬부 옮김
현대심리학의 이해. 김현택 외
프로이트와의 대화, 이창재